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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궁금할 대구, 경북의 숨은 이야기!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에 동서남북으로 큰 출입문이 있었던 것처럼 대구읍성 동서남북에도 4개의 큰 문이 있었다. 진동문, 달서문, 영남 제일관, 공북문이었다. 대구 읍성이 건설된 후 읍성의 서문 근처에 큰 시장이 생겼다. 서문 앞에 있다 하여 이 시장을 서문시장이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서문시장은 조선을 대표하는 3대 시장 중 하나가 되었을 만큼 번창하였다. 서문시장은 1920년 대에 지금의 위치(대구시 중구 대신동)로 이전하였다.
대구지하철 1호선역 중에는 반야월역과 안심역이 있다. 한자로 쓰면 반야월은 半夜月, 안심은 安心이다. 이 지명에는 왕건의 전설이 전해 온다. 반야월은 왕건이 견훤 군대에 쫓기다 밤하늘을 보니 반달이 떠 있어서 반야월이 되었다고 한다. 안심은 왕건이 견훤의 추적을 따돌린 후 마음을 놓았다(안심하였다)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현재 팔공산에는 왕건의 전설을 배경으로 조성된 ‘왕건길’, 그리고 왕건을 구한 장수인 신숭겸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현재 대구의 한자 이름은 大邱이다. 邱(구) 역시 언덕을 뜻하는 한자이다. 大丘에서 大邱로 한자 표기가 바뀐 것은 조선시대 21대 영조(재위 1724~1776) 때이다. 공경하고 삼가는 의미로 왕이나 성인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는게 당시의 상식이었다. 조선시대에 유학은 최고의 학문이었고, 선비들은 유학을 창시한 공자를 우러러 보았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대구의 한 유학자가 대구(大丘)의 구(丘)가 공자(孔子)의 이름인 공구(孔丘)의 구(丘) 자와 같으니 이를 바꾸자고 왕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 일이 있은 후 시간이 흐르면서 大邱라는 한자 표기가 大丘를 대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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