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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궁금할 대구, 경북의 숨은 이야기!


화랑도는 신라 진흥왕 때 인재 양성을 위해 만든 청소년 수련 조직이다. 화랑도를 이끌던 사람을 화랑이라고 불렀다. 화랑도는 15~18세의 청소년으로 구성되었다. 화랑도의 구성원들은 단체로 무예와 학문을 연마하였다. 또 금강산 등 큰 산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국토애를 키웠다. 화랑은 신라가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였다. 특히 화랑도 출신의 많은 인물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화랑도 출신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로는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이있다.
경상북도 군위군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한 인각사가 있어서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를 브랜드 슬로건으로 정했다. 해마다 군위군에선 삼국유사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고등학생들이 참가하여 삼국유사 관련 역사지식을 겨루는 행사인 ‘삼국유사 퀴즈대회’이다. 2019년에 11회 대회가 열렸다.
한국의 오래된 절 일곱 곳은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 가운데 경상북도에 있는 것이 봉정사와 부석사이다. 나머지 다섯 곳은 경상남도의 통도사, 충청북도의 법주사, 충청남도의 마곡사, 전라남도의 선암사와 대흥사이다. 이들 7 개의 절은 모두 삼국시대에 세워진 오래된 절로서, 한국의 불교 역사와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50년 대구로 피난 온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1953년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상당수 문학가, 음악가, 미술가들이 대구에서 예술 활동을 하였다.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현재 대구 도심 동성로 입구에 있는 자리엔 극장 겸 공연장이 있었는데, 이 곳은 전쟁기간 중에 대한민국 국립극장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 지방은 8개의 도로 나눠져 있었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였다. 각 도의 행정과 군사 분야를 책임진 사람은 왕이 임명한 관찰사였다. 관찰사를 감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감영은 관찰사가 근무하는 곳이었다. 감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관찰사가 근무하는 곳이었다. 이 건물을 선화당이라고 했다.
역사학자들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첫째, 신라 수도 금성(경주)이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친 곳에 있어 삼국통일로 크게 넓어진 영토를 다스리는데 불편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구는 동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있어, 통일신라를 다스리는데 지리적으로 유리했다. 둘째, 대대로 금성에서 살아온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옮기지 못했을까? 귀족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이전을 포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문왕의 수도 이전 계획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신문왕 시대에 대구는 수도 이전 후보지가 될 만큼 군사, 교통에서 중요한 도시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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